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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운의 역사를 서술한다.

야외기지 시기

자세하지 않았으나 당시 그가 동네 해방군[1]에 있으며 설정한 임시기지들이 있었다.

2015년 들어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이를 마이크로네이션으로 승격하고 깃발을 부여하였으나 여러모로 마이크로네이션 조건에 맞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2011년 들어 이 단체는 해체하였다고 한다.


적우 시기

건국과 확립

2015년 7월 27일,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세명의 블로그 이웃들과 임시적으로 인터넷상에 임시정부를 세운다. 그리고 스티브 엠페르트의 아이디어로 적우민주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적우민주공화국의 국호는 줄여서 적우민국이나 적우국이라고도 불렸으며, 이 국가는 볼코프 페르트체흐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국기와 국장 영토등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2]

그리고 대통령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수도로 삼고 각 회원들의 집을 영토로 정하여 본격적으로 적우민주공화국이 시작되었으며, 마침내 건국 선포 하루뒤인 7월 28일, 카시야 민주 공화국와 수교를 맺으며 본격적인 국가운영과 외교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7월 29일, 현재 대카르토인민민주공화국의 전신인 카르토 족[3]과 수교를 맺었다.

수교 과정에서,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카르토쉬 애막의 세르게이 담딘수렌을 존경한다고 밝혔고 그렇게 두국가는 혈맹국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4]

8월 9일 도라비아 민주공화국과, 14일에는 가재 민주 공화국과 수교를 맺는다.

그리고 배르로대일과도 수교를 맺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역사가 기록되지 않아서 그 일자를 8월 15일로 추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일 뒤인 25일, 적우민주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에 발전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져 27일에는 경계 경보단계를 완성하였고, 30일에는 벨트로 공화국이 독립한다. 그리고 9월 13일, 삼권 분립을 시행하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3부에 각각 대표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입법 대표로 선출된 아스펠 블러드는 자신이 자격이 안된다며 반대했고, 사법과 행정 대표는 활동조차 하지 않아 위기가 오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그나마 활동하던 국무총리와 일을 함께 할수 없었고 그마저도 대통령은 시간이 안되 모든 일이 국무총리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이를 적우민주공화국의 정치적 1차 위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외교 관계는 정계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변화와 발덜을 거듭하여,9월 25일에는 광원민주공화국, 제네시스와 수교를 맺었다.

그리고 9월 26일, 제네시스의 주도하에 제2차 사이버 초국 대전이 발발하였는데, 발발 다음날인 27일 배르로대일과 단교한 적우국은 연합국측에 가담하게 되었으며 결과는 연합국측의 승리로 끝나, 적우국은 승전국지위를 획득하였다.[5]

중기부터 연방의 성립까지

중기는 적우국의 전성기라고 봐도 무관했다. 10월 1일, 미국에 있는 마이크로네이션인 몰로시아 공화국과 첫 수교를 맺으며 해외로 발을 뻗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정치적 침체기가 있었는지 정확한 역사가 기록되있지 않다.

당시 국무총리가 말하는데 대외적 활동도 활발했고 정치적으로 좀 활동이 적었어도 침체기는 아니였다!!


11월 14일 개맹 민주주의 공화국과, 15일엔 노진구리아 제국과, 11월 20일에는 미네민주공화국과 수교를 맺었다.[6]

그리고, 11월 25일에는 카르가니우스가 자치령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단일 공화국 체제는 무의미해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11월 27일, 대통령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적우 연방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적우 민주공화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적우 민주 공화국카르가니우스 자치령을 설립하여 공화국의 연방화는 이전부터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적우 민주 공화국은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2015년 11월 27일, 현재의 프리타운 민주 연방 공화국의 근간이 되는 연방제 국가를 설립하였으니 이것이 곧 적우 연방 공화국이었다.

적우 연방공화국은 12월 31일에 새 연방 주체인 청구 민주 공화국을 자치령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독립국 벨트로 공화국을 다시 자치령으로 편입 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상황은 이상하게도 율도국 역시 청구국에 대해 자치령 선언이 되있었던 상황이었고, 결국 두 국가간에 대립이 발생하였으며, 2016년 1월이 되자, 모든 행정구역 정리가 종식되었다.

하지만 1월 1일카르가니우스다물제국으로 독립하고 청구의 소유권으로 율도와 적우국은 계속 마찰이 생겼으며, 결국 2016년 2월 23일 청구조약을 체결하며 청구민주공화국은 율도국으로 편입되었다.

적우국은 중기 후반에 접어들며 허구 국가 한빛민주공화국과 대립관계에 놓여있었다.[7]

사실은 카르토쉬 오이라트나 적우 연방 공화국 양국 다 미스테레무스의 말을 믿고서 허구 국가에 대한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었으며, 미스테레무스가 카르토쉬와 적우를 자신의 전쟁에 끌어들였던 것을 두 나라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는 이런 관계를 하루 빨리 해소하고자 하였다.

적우와 카르토쉬는 한빛과의 대화를 시도했으며, 특히 적우국의 경우는 한빛서버에서 열릴 올림픽에 참여를 시도했다.

적우국은 대한민국의 인천 올림픽 폐막식때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2인자 황병서 차수가 참여했듯 그런식으로 참여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미네 민주 공화국과의 대립과 올림픽 소식이 없으며 다시 허구 국가와 마이크로네이션계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었다(...).

양세 화합을 주도하던 적우 연방 공화국은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가국계에서 손을 떼어버린다.

그리고 자치령이 전부 없어져 연방제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볼코프 대통령은 이때부터 공화국 연방 정부를 생각하게 된다.

마치 옛날 소련처럼 여러개의 국가가 하나의 이름으로 연방이 되는것을 원한것이다.

하지만 이계획은 인민들의 극렬한 반대와 국외의 여론에 휘말려 그만 두게 된다.

얼마 후 형법이 제정되는 등 다시 살아나는 듯 했으나 금세 다시 침체기가 도래하노니 이를 제 3차 정치 위기라 부른다.

적우연방공화국은 결국, 내부 분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네오미아 공화국베놈 공화국으로 분리가 된다.

그러며 행정구역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분열시기

네오미아 공화국

분열 이후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아파트에 위치한 자신의 집과 아파트 앞마당을 설정하고 자신의 부모님 둘을 인민으로 삼아 국가를 세웠다.

하지만 이는 자신 혼자서의 비공식적 선언이었기에 지금의 아데알 공국과 같은 거의 1인 국가 체제가 되버렸다.

결국 다른 국가와 힘을 합쳐야 겠다는 생각을 하여 연방사업을 실시하게 되며 베놈 공화국과 연방을 구성한다.


베놈 공화국

베놈 공화국은 분열 이후의 공화국이며 안타깝게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국가이다.

프련에 가입했다가 2016.07.03에 멸망이 선언되며 탈퇴되었다.

후에 박건웅 군이 국방장관이 되며 구 베놈의 영토는 네오미아 부속도서로 편입되어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연방기

프리타운 민주공화국 연방(공화국 연방 시기)

연방의 초기 단계로 존재하였다.

이 시기 연방제의 틀을 갖추었으며, 동년 6월 22일, 프리타운 민주 연방국으로 개편되어 사라졌다.

프리타운 민주 연방 공화국(연방 공화국 시기)

건국 이전 상황

적우 연방 공화국의 분열 후 네오미아 공화국은 활발히 움직이려 노력했으나 베놈 공화국의 경우 대통령이 바쁘다 귀찮다 등 여러 핑계로 활동이 많지 않았다.

이걸 본 네오미아의 대통령은 어떻게든 그를 움직이게 하기위해 두개의 국가와 자원한 앵화 민주 공화국과 함께 프리타운 민주공화국 연방을 설립한다.

건국 초

결국 프리타운 민주공화국 연방은 예정대로 건국되었으나, 앵화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인 도라시니 도라예프율도국으로 귀화를 하면서, 자연스레 앵화는 무정부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활동이 저조했던 앵화는 결국 연방에서 추방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자리를 시르민스 민주공화국이 대신 채웠다. 또한 프리타운은 괴뢰가국송련국을 두게되고, 연방장은 가상영토 홀트리 타운과 온나시를 송련국으로 제조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정치적으로 다시 잠정상태를 보이던 중, 진시현측의 사이버 테러가 발생하여 연방장이었던 볼코프는 바로 국가임시폐쇄를 선언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진시현의 사이버 테러가 마무리되자 국가 임시폐쇄를 다시 해제한다.

이후 연방장은 백호제국의 멸망국인 구르메 공화국를 할양받아 자치주로 세울려는 노력중에 있다.

며칠 후에 국호와 국기 국장이 공식적으로 바뀌며 프리타운 민주공화국 연방이, 프리타운 민주 연방 공화국으로 국호가 바뀌었다.(약자로는 FDFR)

도라시니 도라레프가 율도국의 국적을 벗고 다시 앵화로 돌아와 도라비아 민주 공화국 (자치 공화국)으로 명칭을 바꾸며 연방에 가담했으며, 2016년 7월 4일, 크리키아스도 연방에 가입한다.

또한 사이버 부대가 정식 설립되었고 정당제가 실시되면서 7월 11일, 두개의 정당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중화 인민공화국의 전시상황으로 국가 위기단계가 3단계인 불안이 발령되었다.

7월 16일 에는 프련측에서 발송한 할양증서가 다시 되돌아왔으며 정식적으로 구르메 공화국구르메 주가 되었다.[8]


2016년 7월 19일, 시르민스가 멸망선언을 하였다.

2016년 말

2016년 7월 19일, 시르민스의 멸망선언 이후 프리타운 연방은 허구 국가와의 수교와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8월 6일에는 백호제국의 외교부 장관이 프리타운에 연합의 일원으로 가입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프리타운의 연방주체 중 하나였던 로보로스의 기는 8월 26일, 제작되었다.

9월 11일에는 인민행동당이 창당되었으며 10월 4일에는 정운백제국에서 프리타운측에 수교를 요청하게 된다.

10월 16일, 다중국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10월 21일, 박하제국에서 수교를 요청하였다. 27일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12월 1일 아이슬란드에 주재하는 마이크로네이션 가데랜드 왕국과 수교하였다.

그리고 16일에는 홍별-프리타운 조약이 체결되었다.

2017년

2017년 1월 1일, 프리티운 측은 신무기 2 정의 총을 도입하였다고 발표하였다.

1월 6일, 멜로 제국오카 왕국에 합병이 되어버리면서 프리티운과 멜로제국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

다음날에 삼브로엔 제국에서 프리티운측에 수교를 신청하였다. 11일에 프리타운과 양구 연방의 수교가 성사되었다.

1월 14일, 한비자 사무차장에 의하여 이른바 연합 봉금령이 시행되여 연합원의 모집이 금지되었다.

그날 프리타운의 소공화국 중 하나였던 베놈 공화국 (프리타운)의 모든 소유 영권이 네오미아 공화국 (프리타운)에게 넘어가면서, 그 날로 베놈 공화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되었다.

대통령은 박건웅프리타운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1월 17일, 제1차 입법관리위원회가 발족하였다.

1월 24일에는 군법이 제작되었으며, 27일 새 국회의장이 임명되고 31일에는 홍별민주공화국과의 예정되었던 회담이 양국 국가원수의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었다.

2월 3일, 대통령은 헌법의 개정안을 발표했다.

2월 13일, 고려 민주사회주의 국민공화국에서 수교를 요청했다고 한다. 3일후, 뜬금없이 홍별민주공화국이 연합에 가입하여 홍별민주공화국 (프리타운)이 되였다.

2월 20일 방송통신부 장관을 임명했으며, 다음 날부터 국가살리기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28일에 재무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때 아사달이라는 신국가가 발견되었고 대통령은 이노를 보내 아사달을 지원한다.

3월 첫날에 프리타운에서는 새로운 대통령기를 제작하였다고 밝혔는데, 그 날은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다.

그리고 3월 3일, 국회위원장에게는 부통령으로 승격되는 영광이 주어졌다.

그날 진영연방에서 수교 요청이 들어왔으며, 육군기는 완성되었다.

4일에는 방송통신부 장관인 이노가 해임되었으며 외무국 장관이 새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때 아사달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다. 결국 양국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전운이 감도나 회담이 열려 이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4월에 들어서며 프리타운-아사달 전쟁이 발발하게되고 이는 회담으로 마무리 된다.

4월 3일에는 건국 1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외무국장 미르도프 크론의 지시 하에 프리타운 4월 대개혁에 돌입해, 익명의 건의로 정부조직이 간소화되기 전까지 프리타운의 근본과 기틀을 이룰 조직을 세우게 되었다.

당시 크론 외무국장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2인자 권력 분산 등 여러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4월 중반부터 주국 대한민국의 시험기간이 시작되며 주로 일하던 사람들이 휴가를 내며 국가는 침체기에 맞딱드린다.

5월 1일,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대통령이 국가살리기 프로젝트를 재 실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발전방향 몇가지를 발표한다. 5월 4일, 산천민주공화국과의 외교가 시작된다.

6월 8일, 미르도프 크론이 신연합 사무총장 투표를 조기 종료시키는 등 부정선거 의혹이 보이자 이에 일부 사람들이 반발하였고 김현빈 입법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그를 탄핵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결국 그는 6월 9일에 외무국장직 자진사퇴를 했다.

하지만 곧 그는 가상국가와의 마찰을 발생시켰다.

결국 6월 17일, 추방안이 올라왔고 대법원의 수사 끝에 "한빛과 크론 간의 사과와 화해로 끝내자." 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현빈 파는 추방안을 철회하지 않았고, 결국 삼권을 설득해 추방시켰다.

6월 26일, 미국 조지아 주에 위치한 초소형 국민체인 리트젠버그 공화국과 외교관계가 성립되었으며 가상국가 특별법이 건의되었다.

6월 28일, 고려민주사회주의국민공화국이 프련의 위성국으로 편입 되면서 국호가 남화민국 프리타운으로 바뀌었다.

7월 29일, 벨벤 폭죽 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다.

8월 18일, 산천자유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프련의 특별자치연방주체로 편입되면서 국호가 산천프리타운특별자치국으로 변경되었다. 초대총독에 쩡허칭이 임시로 임명되었다.

9월 3일, 징병제가 실시 되었다. 15세 이상의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사이버부대에 배치되게 되었다. 9월 22일, 프련은 이제 위대했던 기상을 접고 가온 연방의 주인 프리타운 주로 가입하였다. 9월 24일, 프련은 공식적으로 가온 연방 프로젝트 백지화를 선언하며 연방공화국 체제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10월 25일, 국민의 참여가 최고로 저하된 시점에서 그는 결국 정부가 직접 주도하여 움직이는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국명을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개명하게 된다.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기)

2017년 9월 23일, 프리타운 민주 연방 공화국가온 연방하주로서 존속하기로 되여 있었다.

그러나 현지 인민들 내지 당국에 파견된 외교 대사들은, 아무런 자체 통고없이 프리타운의 가온속주향 편입에 대하여 수차례 항의하였고, 한편 대카르토인민민주공화국은 프리타운과의 단교를 선언하였다.

항의, 비판이 지속되자, 결국 프리타운 민주 연방 공화국의 대통령인 볼코프 페르트체흐9월 24일 가온 연방 프로젝트 백지화 선언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카르토쉬와의 외교가 복구되며 연방 체제는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인민의 정치 참여도가 이 시기를 기선으로 점차 내려앉기 시작하였고 10월 중후반에는 볼코프 페르트체흐가 이를 느끼었다.

10월 25일, 현지 정부는 인민의 참여가 최고로 저하된 시점에서 결국 정부가 직접 주도하여 움직이는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사회주의 선언을 하였으며 국명을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로서 프리타운의 역사는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또한, 다음날인 10월 27일에 사회주의, 좌파 스펙트럼을 주 골자로 하는 프리타운 공산당이 창당되였다.[9]

같은 날, 걍둥당은 해체되였다.[10]

이제 프리타운에는 3개의 당만이 남게 되였다. 10월 29일,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은 아키타 연합국, 평월자유사회주의연방공화국, 묘국 3개국과 수교를 성사시켰다.[11]


확립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10월 체제 이후로 3개국과 수교를 완수하였으며, 그 와중에 걍둥당이 해체되고 공산당이 창당되였다.

10월 30일, 김주혁이 교통서고 사망하자,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조문을 표하였다.

당일 남화민국에서는 총선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11월 1일, 삼브로엔 공화제국이 점점 가국적 요소가 보이기 시작하자, 프리타운 내에서 삼브로엔 공화제국과의 단교 여론이 높아져갔다.

이에 현지 정부는 삼브로엔을 마이크로네이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즉각 단교함을 선언하여 그날 바로 단교하였다.

하지만 11월 말 하눌아름에서 미르도프 크론은 우주 이주 초국인 아스가르디아의 예를 들며 우주 이주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우주군 창설과 인육 섭취 등의 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7년 12월 4일, Voice of Freetown세달 방송통신 그룹에 합병되였다.[12]

12월 15일에는 국민참여당이 해산을 선언하였다.[13]

이로써 프리타운에는 단 두 개의 정당만이 남게 되었다.


위기와 재안정

2017년 12월 6일, 미르도프 크론이 복귀를 선언하며 다시 외무국장에 올랐다.

이를 확인한 정대성과 일행은 프리타운 연방을 "테러범을 옹호하며 감싸는 국가"로 지칭하며 선전포고 하였으며 다시금 한빛과 대치하게 된다.

이 와중에 다른 허구국가 가상대한제국마저 전쟁을 선포하며 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12월 8일,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미르도프 크론의 외무국장직을 파면하고 허구국가 테러 혐의에 관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14]

그리고 타계외교처는, 미르도프 크론을 추방하고 입국금지하였다. [15]

대통령이 직접 미르도프 크론을 외무국에서 쫓아냄으로써 허구국가와의 갈등은 끝났지만, 내분이 계속 되었다.

(허구 국가들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복귀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미르도프 크론과 이미 사법상 입국 금지령을 선언한 도라시니 도라레프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둘은 대판 싸운다.

결국 이에 질린 김현빈은 오프라인 상으로만 활동하겠다고 선언하였다.[16]

헤르만 디트리니아 역시 이런 상황에 질렸다고 말하였으며, 하눌아름 왕국의 건국 프로젝트도 무산되어버린다.

그리고 대통령 볼코프 페르트체흐는 이번 상황 이후로 그 어느쪽에도 신경쓰기 싫다고 주장하며 온라인 활동을 대폭 줄이고 오프라인으로만 활동하는 계획을 세웠다.[17]

12월 17일, 헤르만 디트리니아와 미르도프 크론의 회의에 따라 대한민국 초국계의 국가보안법 위반을 방지하며 초국을 계속할 수 있는 방도가 결정되었다.

크론이 이끄는 기업형과 디트리니아가 이끄는 실험형으로 이루어진 두 방법에 따라 프리타운 연방은 기업형 쪽에서 활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국과의 마찰이 끝나며 안정기가 다시 도래하였다.

12월 19일, 대통령은 비트코인 매입 및 매출을 금지하였으며 관련 법을 지정하기로 결정 하였으며 트위터에 이를 알렸다.

이에 따라 12월 20일, 암호 화폐 거래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재부활

2018년 1월 1일, 문화부 소속 프리타운인쇄기획공사가 창립되었다.[18]

그리고 문화행동연대가 창당되여 프리타운의 정당이 세 개로 늘어났다.

2018년 1월 3일,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정부 카카오 플러스 친구 서비스가 오픈되었다.

1월 5일,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마스코트 '토나'가 만들어졌다.

주석

  1. 그냥 꼬맹이들의 비비탄 전국시대였다.
  2. 이 당시 국기와 국장 등은 빠르게 바뀌었다. 당시 마이크로네이션 위키에는 그러한 변경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국기와 국장이 변경된후에도 변경 전의 국기와 국장이 문서에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였다.
  3. 카르토쉬 애막
  4. 우호 관계는 한빛 문제와 배르로대일과의 제2차 초국전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5. 이 당시 세르게이 담딘수렌이 홀로 카르토쉬 애막을 대표하여 참전, 카르토쉬 애막 역시 연합국 측에서 승전국 지위를 획득하였다.
  6. 11월 14일의 개맹, 15일의 노진구리아 제국 건은 그 쪽에서 먼저 수교요청을 보내 적우국이 승인한 사례이다.
  7. 카르토쉬 오이라트는 국가 멸망/막장 테크를 타며 대립관계의 구심점이 되었다.
  8. 정식 승인 전 홍수가 난적이 한번 있다.(2016.07.16)
  9.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10.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11. 밀린 수교 신청 관련
  12. VOF-사과문
  13. []
  14. http://cafe.naver.com/uftdr/2123
  15. http://cafe.naver.com/uftdr/2127
  16. 사실상 은퇴나 마찬가지다.
  17. 그도 슬슬 은퇴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18. [1]